성급한 행동
박돈화
알렉산더 대왕이 신하로 부터 잘 훈련된 사냥개 두 마리를 선물 받았다. 사냥을 좋아하는 왕은 매우 기뻤다. 어느 날 왕은 개들을 데리고 토끼 사냥에 나갔다. 그런데 개들은 사냥하지 않고 누워 있기만 했다. 화가난 대왕은 개들이 쓸모없다며 죽여버렸다. 그리고는 신하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찌 토끼 한 마리도 사냥 못 하는 개를 선물했는가? 내가 그것들을 죽였네.” 신하는 왕의 말을 듣고 슬퍼하며 말했다.
“왕이시여! 그 개들은 토끼 잡는 개들이 아니옵니다. 호랑이와 사자를 잡기 위해 오랫동안 훈련된 개들이옵니다.” 왕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는 이야기이다.
지난주에 글쓰기 숙제를 하기위해 아마존에 책을 주문했다. 매주 독후감이나 감상평 그리고 시를 쓰는 것이 숙제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쓰는 것이 글을 잘 쓰는 유일한 방법. 우리 선생님 철학이다.
요즘은 속도 시대다. 어제 책을 주문했는데 오늘 배달된다고 한다. 참 빠르다. 어디 그뿐인가? 인터넷을 통해 배달 차량이 어디 있는지, 내 소포가 언제 배달될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주문한 책이 밤 8시40분에 배달되었다고 아마존에 떴다. 확인 사진까지 올라왔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책이 없었다. 혹 옆집에 배달됐나? 아니면 차고 문 앞에?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배달 실수가 분명했다. 아내는 내일까지 기다려 보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30여분 후 아마존에 전화했다. 배달부가 잘못 배달했다고, 배달부에게 연락해서 다시 배달할 수 없느냐고 투덜거렸다. 아마존 양은 나를 진정시키려고 열심이다. ‘손님 만족’이 신조다. 배달부에게 연락하겠다, 걱정하지마라, 무료로 책을 다시 배송하겠다, 만일 이웃이 책을 갖다 줘도 반송할 필요 없다, 등등… 흥분한 나를 달랬다. 하기야 이런 이유로 아마존을 이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나는 평정을 되찾고 잠을 청했다.
우리 집은 커튼을 젖혀야 아침이다. 아내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커튼을 열고 보니 아마존 소포가 집 옆 화단 기둥에 기대어 있었단다. 어젯밤 배달되었다는 책이었다. 아내가 옳고 내가 틀리는 순간이었다. 머릿속에 몇 가지 생각이 스쳤다. 10보만 걸으면 정문인데 왜 어두운 곳에 놓고 갔지? 결국, 다른 집에 배달한 것은 아니네. 아마존에 불평한 내가 잘못한 것인가? 아내 말대로 아침까지 기다렸다면 아무 일 없었을걸…. 배달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알량한 내 자존심은 잘못하지 않았다고 버틴다. 허 참! 배달부는 옳은 주소에 배달했으니 잘못한 게 없다. 그러나 정문에 배달하지 않았으니 내 불평 또한 정당한 것 아닌가? 억지 써 보았지만 영 마음이 불편한 것이 아무래도 내가 성급했고, 잘못했다는 느낌이다.
따뜻한 물 한 잔 마시고 친절한 아마존 양에게 전화했다. 배달부가 다른 집에 배달한 것이 아니라고, 우리 집 화단 옆에 놓여있는 것을 오늘 아침에야 발견했다고, 내 마음이 편치 않다고, 배달부에게 미안하다고…. 그녀는 여전히 손님 만족이 최우선이다. 배달부 상사에게 연락하겠다며 나를 안심시킨다.
내가 왜 이렇게 됐나? 남한테는 한없이 너그럽다고 아내가 늘 불평했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성급하고 날카로워졌나? 아내는 물론이고 나 자신도 실망스러웠다. 아내한테 사과했다. 아마존 배달부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았는지 내 마음이 불편했다. 아내 말처럼 아침까지 기다릴걸…. 나의 성급한 행동은 실수와 후회를 가져왔다.
영어에 ‘성급은 낭비를 만든다(Haste makes waste)’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성급은 후회를 만든다(Haste makes regret)’를 더하고 싶다. 비록 속도 시대에 살고 있지만, 불평이나 화는 느린 시대에 살아야겠다. 내 고향 충청도에 가고 싶다.
2021년 3월 10일 Whittier, Ca에서